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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
작성일23-11-07 01:03 조회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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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공작님도 너무하세요. 어떻게 첫날밤을 보낸 신부를 혼자 자게 둘 수가 있죠?”

목욕을 마치고 나온 블레어의 머리를 빗겨 주던 리나가 분개했다. 본인이 그 일을 당하기라도 한 양 억울한 목소리였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 험담을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는데도.

“나는 괜찮아. 잠은 따로 자는 게 편하기도 하고.”

어차피 귀족들을 합방일을 제외하면 서로 다른 방을 사용했다.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리나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어제는 다른 날도 아니고 첫날밤이라고요.”

“……리나, 빗에 힘이 들어가서 아파.”

“헉, 죄송해요. 흥분해서 그만.”

빗을 부서트릴 듯 쥐고 있던 리나의 힘은 조절이 되었지만, 분노마저 삭이진 못했다.

“아무튼! 이 낯선 저택에, 낯선 사람들만 잔뜩 있는 곳에, 남편 하나 보고 시집온 어여쁜 부인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남편 자격 박탈감이에요, 이건.”

“넌 결혼도 안 해 본 아가씨가 그런 걸 어떻게 잘 알아?”

“다 지식의 보고이자 마음의 양식인 책에서 얻은 지식들이죠.”

블레어는 리나가 꺅꺅 얼굴을 붉히며 밤새워 읽던, 빨간 스티커가 붙어 있는 책을 떠올리곤 웃었다.

“뭐, 공작님 외모는 솔직히 남자주인공 그 자체지만……. 인품은 조금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네요.”

종알거리는 리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다소 가라앉았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차츰 정돈되어 가는 거울 속 제 모습을 바라보던 그때, 목과 쇄골 사이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마법진?’

블레어는 재빨리 옷깃을 열어 그 자리를 확인했다. 하지만 보이는 건, 지난밤 그가 만들어 놓은 붉은 자국들뿐이었다.

그것을 보자, 지난밤의 기억들이 떠올라 얼굴에 열이 올랐다.

블레어는 황급히 옷깃을 덮었다. 아무래도 잘못 본 모양이었다.

리나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님? 옷이 불편하세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민망함에 고개를 내젓던 블레어는 문득, 리나의 손가락에 감긴 얇은 붕대를 발견했다.

어젯밤, 목욕 시중을 받을 때만 해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블레어가 물었다.

“손 다쳤니?”

“아…….”

빗질하던 리나의 얼굴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비쳤다.

“의사를 불러 줄게. 치료받자.”

의사를 부르겠다는 말에 리나가 펄쩍 뛰며 만류했다.

“아, 아뇨! 괜찮아요. 그냥 살짝 베인 것뿐인데요.”

“어쩌다가 다친 거야?”

“어, 그냥……. 아, 아침에 일하다가 그랬어요. 아시다시피 제가 워낙 좀 덤벙거리잖아요.”

리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블레어의 걱정 어린 시선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조금 전 리나가 저더러 남편 하나 믿고 이 낯선 곳에 온 신부라고 했지만, 그건 리나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저 하나만 믿고 익숙한 공간, 정든 동료들을 떠나온 아이가 다쳤다니 마음이 쓰였다.

특히나, 전생의 기억이 떠올라서 더더욱.

‘전생엔 내 상황에 매몰돼서 리나에게 거의 신경 써 주지 못했었지.’

그런 블레어의 기색을 읽은 리나가 부러 가벼운 어조로 덧붙였다.

“전혀 걱정하실 정도 아니에요. 전하, 아니, 마님의 머리카락에 피가 묻을까 봐 붕대만 감아 둔 거예요.”

“……정말로?”

“보세요, 붕대 바깥쪽엔 피가 안 묻어나죠?”

그 말대로 깊은 상처는 아닌 듯했다.

“전하는 그저 어떻게 이 저택에서 잘 살아 볼까, 저 얼굴만 번지르르한 공작님을 어떻게 울려 볼까, 그 걱정만 하시면 돼요.”

리나의 장난기 어린 말에 마음이 좀 놓였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베인 거라면 칼이란 소리야. 리나는 부엌일 담당도 아니니 칼을 만질 일도 잘 없을 텐데. 설마,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하지만 블레어의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짠! 이제 다 됐어요. 식당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블레어의 머리 손질을 마무리한 리나가 그녀를 일으켰다.

리나의 안내를 받으며 식당으로 내려오자, 기다리고 있던 하인이 문을 열었다.

신혼 첫날엔 신혼부부가 신랑의 가족들과 함께 오찬을 드는 것이 관례였다.

그렇듯 여느 가문이라면 직계 가족들로 북적북적할 신혼 첫날 식사 자리였으나, 넓은 식당 안엔 오직 헤르딘만이 앉아 있었다.

그에겐 가족이 없었다.

형제도 없이, 일찍이 양친을 여읜 헤르딘은 홀로 자랐다. 그런 그에게 부모나 다름없는 사람이 바로 에스메랄다 황후였다.

텅 빈 식당을 보자, 그가 그토록 자신을 증오하는 이유를 새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원망스러운 마음과는 별개로.

블레어의 의자를 빼 준 집사는 능숙하게 그녀의 잔에 식전주를 채워 준 후, 식당을 나갔다.

식당에 둘만 남겨지자, 헤르딘이 잔을 들며 물어 왔다.

“잠은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밤새 블레어를 울리고 괴롭히다 동틀 녘이 되어서야 겨우 놓아준 장본인이 묻기엔 조금 우스운 말이었으나, 블레어는 순순히 대답했다.

“네.”

짧은 안부 인사를 끝으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바로 어제 결혼식과 첫날밤을 치른 신혼부부라기엔 지나치게 삭막한 침묵이 이어졌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헤르딘이었다.

“식사가 끝나면, 집사가 사용인들을 소개해 드릴 겁니다.”

그는 나이프로 능숙하게 스테이크를 썰며 말을 이었다.

“사용인들의 인사가 끝난 후엔 저택을 안내해 드릴 거고, 그 이후 일정은 없으니 쉬셔도 됩니다.”

“고마워요.”

“더 궁금한 점이나 하실 이야기가 있으면 편히 이야기하세요.”

“십 년 전 화재 사건 조사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스테이크를 자르던 그의 나이프가 멈췄다.

내내 건조하던 그의 푸른 눈동자가 블레어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그것을 목적으로 성사된 계약 결혼이라지만, 설마 당장 오늘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그것도 바로 어제 결혼식과 첫날밤을 치러 몸도 마음도 피곤할 시기에.

“당시의 기억이 없다고 하시니, 우선 최면술사를 구하고 있습니다.”

‘최면술’이란 단어에 블레어의 몸이 흠칫 떨렸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최면술은…… 이전에 몇 차례 시도해 봤지만, 효과가 없었어요.”

“글쎄요, 이번엔 다를 수도 있겠죠.”

헤르딘은 여상히 대꾸했으나, 그의 말엔 뼈가 있었다. 그는 블레어가 진짜로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닌, 기억을 잃은 척하는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나를 의심하고 있군요.”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믿겠습니까?”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어조였다.

본심을 들키면 숨길 법도 한데, 그는 제 본심을 숨길 마음도 없는 듯 담담했다.

“정말 기억을 잃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 기억을 잃은 척하는 건지는 당신만 알고 있을 텐데.”

정치적 적대 관계인 황가의 딸.

그가 자신을 믿지 못할 이유는 그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블레어는 전생으로 그것을 충분히 실감하고, 숙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연히 생각만 하던 것과, 상대의 날것 그대로의 적의를 실제로 마주하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계약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당신을 믿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의 말이 맞다.

이건 계약이다.

사랑과 믿음을 전제로 한 결혼이 아닌, 득실을 따져 보고 한 계약. 애초에 이쪽에서 먼저 그렇게 제안하지 않았나.

계약한 이상, 자신은 그의 의심에 해명할 필요가 있었다.

블레어는 그의 요구에 담담히 수긍했다.

“……알겠어요. 그럼 당신의 말대로 우선 최면술부터 시도해 봐요.”

신혼 첫날, 부부의 오붓한 첫 식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 * *

사용인들과의 인사가 끝난 후, 집사인 메이슨이 저택 안내를 맡았다.

그는 집안 대대로 델마르크 공작가를 모셔 온 만큼 공작가를 향한 충성심이 깊었고, 자부심이 있었으며, 현 가주인 헤르딘보다 공작가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

저택 안내는 저녁 식사가 끝나고서까지 이어졌다.

회귀 전까지 이 저택에서 살았던 블레어는 이미 다 아는 정보였지만, 메이슨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죽음에서 돌아와 다시 살펴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안내가 끝나고 블레어의 침실로 향하는 길, 메이슨은 뒤늦게 생각난 듯 사과했다.

“바로 어제 식을 치르시고 피곤하실 텐데, 제가 마음이 급해 욕심을 부린 것 같습니다.”

“안주인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인걸. 덕분에 저택의 속속들이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네.”

메이슨은 공작가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블레어에게 우호적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앞에서 사적인 감정을 내비친 적은 없었다.

블레어는 달갑지 않은 주인이라 해도, 저를 주인으로서 대우해 준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저택 구경이 재미있었기도 했고.

어느덧 블레어의 침실 앞에 도착했다.

“혹, 더 궁금한 점이 생기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물어봐 주십시오.”

“사용인들 인명 명단과 집안 비품 장부를 보고 싶네.”

메이슨은 블레어의 요구에 놀랐다.

사용인들의 월급으로 얼마가 지급되는지, 비품의 잔량은 어떻게 되는지 등 가문의 재정과 관련된 문제는 안주인이 할 일이 맞다.

그러나 실상 귀족가의 안주인이 그 일을 직접 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숫자를 살피고 관리하는 것은 여간 머리 아픈 일이 아니므로, 보통은 아랫사람이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직접 하겠다니.

“그 일을 스타베팅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제 나도 델마르크의 일원이니까. 마땅히 내 몫을 해야지.”

회귀 전의 블레어는 여느 귀부인들처럼 공작저 내부의 업무는 메이슨에게 일임했다.

안주인의 일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공작가 사람들이 그녀가 집안일에 손대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이젠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비록 1년짜리 공작 부인이지만, 제 몫은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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